컴공 2학년 김철수 씨는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요
텅 빈 공허함만이 꽉 들어차는 시간이 있다. 해가 짧아져서 벌써 창 너머로는 붉고 긴 빛이 내렸다. 네 평짜리 자취방이 물들었다.
날씨가 좀 추워지나 싶더니 금세 겨울이다. 이젠 창문을 닫아놔도 찬 바람이 들었다. 문득 식재료를 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쿠팡 어플을 켜서 인기 상품 목록을 죽죽 내렸다. 애시당초 무엇을 사겠노라 하는 구체적 계획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물건을 고르진 못했다
멍한 눈빛으로 의미없는 스크롤링을 반복했다. 몇 가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도 같은데 그게 정확히 몇 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일 쯤이면 냉동 대파 따위의 식재료들이 몇 개 문 앞으로 배송되겠지.
장보기라고 명명하기도 애매한 그 행위는 한 십 분 더 하다가 이내 관뒀다. 어차피 특별히 사야할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휴대폰을 탁 덮었다. 눈 앞에 마주한 자취방의 네모난 천장이 적막으로 가라앉았다. 온통 고요한 세상이 조금 낯설었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푸른 화면이 잠깐 반짝이다 말았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행위는 요즘 들어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 됐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의미없이 음식을 입에 넣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는 행위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답을 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외면했을 뿐이지 이미 계속 머리속에 맴돌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내 속을 들여다 봤다. 무척 공허한 마음이었다. 이 허전함을 어떻게든 메워 보려고 했던 거다. 몇 천원짜리 계란이나 새우같은 것들로.
공허함이라는 단어 말고 이 헛헛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속이 텅 비어서 툭 치면 부숴지는 공갈빵같은 상태다.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부질없어서 반투명하게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런 생각만 하면서 산다.
대학교에 입학한지 2년이 지났다. 숨이 차게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 그렇게 내달렸으면 빈 물병이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데, 모래 한 톨 남아있는 게 없다.
지금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던 건가? 애초에 방향을 생각해 본 적이 있기는 했었나? 그런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앞이 뿌옇게 흐려서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코딩, 코딩... 코딩은 재미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면 기분이 들뜨고, 가끔은 평생 이것만 하고 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실력적으로 성장한 자신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걸까?
매년 컴퓨터공학과 졸업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학과만 해도 매년 몇 백 명이 넘는 졸업자를 배출한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여러 부트캠프들에서는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들도 우후죽순 쏟아진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나는 그냥 평범한 컴퓨터공학과 학생 A에 불과하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파도에 정처없이 떠밀려 다니는 모래알 1이다. 대한민국 IT 업계의 미래같은 건 고사하고 당장 졸업 후 내 미래도 모르겠다. 무엇 하나 잘난 구석이 없는 내가 잘난 무언가를 꿈꾼 것부터가 문제였을까?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내 욕심이고 교만함인 걸까?
방향성을 상실한 나침반처럼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요즘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거리에는 캐롤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먼 과거의 동방박사는 밝은 별 하나를 길잡이 삼아서 이역만리를 찾아갔다는데... 2023년 인천광역시의 밤하늘은 어둡기만 하다.